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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빈곤구제 이야기
시진핑 빈곤구제 이야기
2020-05-20

    머리말

 

   하나하나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인민지도자와 빈곤구제사업과의 인연을 이어놓았다.

 

   생산대대 당지부 서기로부터 강대한 대국의 최고지도자에 이르기까지 40여년간 시진핑 동지들은 시시각각 빈곤대중을 념려하지 않고 시종 빈곤구제의 사명을 짊어졌다.

 

   일찍 섬서성북부의 량가하가 새치기를 할 때 그는 마을사람들을 인솔하여 우물을 파고 흙땜을 쌓고 계단식밭을 쌓고 늪가스못을 건설하면서 "일년 사계절 옥수수가루를 먹을수 있다"는 소박한 목표를 향해 분투하였다.

 

   하북성 정정에서 현당위원회 서기로 있으면서 자전거를 메고 호타하를 한걸음한걸음 건너 전 현 200여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농촌개혁의 빈곤퇴치길을 모색하였다.

 

   복건성 녕덕에서 지구당위원회 서기를 담임한 그는 거의 모든 향과 진을 돌아다니며 "약한 새가 먼저 날아다니는" 길을 끊임없이 모색했다.

 

   성에 가서 사업할 때 그는 맞춤형지원을 주시하면서 "민녕협력"이 녕하대지에서 풍만한 성과를 거두도록 추동했다.

 

   18차 당대회 이래 시진핑 총서기는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인류빈곤감소사업의 력사적높이에 서서 중국의 정밀빈곤퇴치사업을 알심들여 계획하여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실현하고 첫 100년의 분투목표를 실현하는데 전략적지도를 하고 몸소 실천하였다.

 

   시진핑 총서기는 전국에 심입하여 대규모빈곤층밀집지역에 심입하였다. 20여 개의 빈곤 마을을 답사했습니다. 련속 4년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를 사회하고 정치국회의에서 빈곤퇴치난관돌파 성과심사보고를 청취하였습니다. 련속 6년동안 빈곤퇴치난관돌파좌담회를 소집하고 련속 6년동안 전국 빈곤구제일기간에 중요행사에 참석하거나 중요지시를 내렸으며 련속 6년동안 신년사에서 빈곤퇴치난관돌파를 강조하였고 련속 7년동안 전국 두 대표위원들과 함께 빈곤퇴치난관돌파대계를 함께 토의하였으며 기층간부와 군중들이 반빈곤투쟁의 위대한 사업에 뛰여들도록 여러차례 회답하고 격려하였다.

 

   시진핑 총서기 자신이 말한것처럼 "40여년래 나는 선후로 중국의 현, 시, 성, 중앙에서 사업했는데 빈곤구제는 시종 내가 사업하는 중요한 내용의 하나이며 내가 가장 많은 정력을 들였다."

 

   (1)

   정말 가난한 이야기를 보세요. "여러분은 제가 진짜 상황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진실하지 않은 것은 보지 않아야 합니다."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어린왕자, 어린왕자, 어린왕자, 어린왕자, 인생명언)

 

   2020년 봄, 중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전염병의 충격 아래 있다. 전국 인민을 인솔하여 "전염병"을 힘써 싸우는 동시에 시진핑 총서기의 마음속에는 시종 하나의 대사를 걱정하고있다.

 

   3월 6일, 결전결승 빈곤퇴치 난관돌파좌담회가 북경 인민대회당에서 개최되였다. 이는 18차 당대회 이래 빈곤퇴치난관돌파방면에서 가장 큰 규모의 회의이다. 방역안전을 보장하는 동시에 당중앙의 정신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각 지구, 각 부문에 전달하기 위하여 좌담회는 화상회의의 형식으로 진행되였고 모든 성, 자치구, 직할시의 주요책임자들이 모두 참가하였으며 중서부 22개 성들에서 줄곧 현급까지 진행되였다. 좌담회가 시작되자마자 시진핑 총서기는 단도직입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전염병이 발생한후에도 전염병이 효과적으로 통제된후 다시 지방에 가서 전염시킬것을 고려한적이 있다. 그러나 올해 만산하면 아직 10개월도 안되는 시간이 있으며 날자로 계산하면 300일이고 예정대로 빈곤퇴치 난관돌파 목표를 실현하는데는 워낙 많은 난관이 있으며 전염병이 또 어려워졌기에 반드시 하루빨리 재동원, 재배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앞을 내다보니 300일! 빈곤퇴치 난제해결목표를 실현하여 전면적인 초요사회로 나아가야 한다. 중국인민의 천년의 원대한 꿈이 오늘을 이루었으니 어찌 격월할 수 있겠는가! 최근 한세기동안의 분투로정에서 중국공산주의자들은 인민을 인솔하여 빈곤에서 벗어나는 하나하나의 기적을 창조하고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실현하는 웅대한 목표를 세웠다.

 

   이는 당중앙이 력사와 인민에게 한 장엄한 약속이다.

 

   18차 당대회가 페막된후 중공중앙 총서기로 새로 당선된 시진핑 총리는 중외기자들과의 회견에서 "인민들의 아름다운 생활에 대한 동경이 바로 우리의 분투목표이다."고 힘있게 말했다.

 

   이 분투목표에 직면하여 그는 책임이 중대함을 깊이 느꼈다.

 

   "그때 가서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실현한다고 선포할수는 없지만 아직도 그렇게 많은 군중들이 빈곤선아래에서 생활하고있다."

 

   빈곤의 진실한 내막을 똑똑히 파악하고 파악이 있어야 빈곤구제사업을 목적성있게 추진할수 있다. 시진핑 총서기는 취임하자마자 이 요구를 제기하였다.

 

   한달여후 총서기의 그림자가 한랭한 태항산의 깊은 곳에 나타났다.

 

   하북성 부평현 락타만촌, 빈곤호 당영빈이 이전에 만났던 가장 큰 관리는 향장에 지나지 않았다. 그날 촌지부서기 고윤금은 당영빈의 집에 와서 상부에서 시찰하러 온다고 했지만 누가 왔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뜻밖에 시진핑 총서기가 왔다.

 

   시진핑 총서기의 손을 잡고 당영빈은 밤새 준비한 말을 잊을 정도로 긴장했다.

 

   시진핑 총서기는 이번 고찰의 목적은 "참된 빈곤을 보는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길이 아무리 멀고 조건이 아무리 어려워도 이번 행사의 목적에 복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총서기는 현지 간부들에게 특별히 여러분을 찾아뵙는것은 바로 우리 나라의 현재 빈곤상태와 실제상황을 료해하기 위해서이다. 여러분은 나에게 진정한 상황을 보여주고 진실하지 못한 상황을 보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좀 멀리 걸어가야 한다. 설사 적게 보더라도 진실해야 한다.

 

   식구가 몇명이고 남매가 몇명이고 집에 땅이 몇무 있으며 수확이 어떠한가, 농촌합작의료가 어떠한가… 참으로 가난하고 실정을 살피자 총서기는 한마디씩 아주 세심하게 물었다.

 

   부뚜막 위의 쇠솥에서 아직도 김이 나고 있다. 총서기가 솥뚜껑을 열고 살펴보니 만터우, 옥수수떡, 고구마, 감자, 호박을 찌고 있었다.

 

   탕룽빈의 부인은 솥에서 찐 감자 한 조각을 꺼내 총서기에게 건네주었다. 총서기는 한덩어리를 쪼개서 입에 넣었다. "맛이 좋다!" 동료들에게 먹이기도 합니다.

 

   만리 길을 걸으면 국민이 제일이다. 18차 당대회 이래 시진핑 총서기의 발자취는 하나하나의 집중된 극빈지역에 파급되였다. 농가의 정원, 논밭의 밭머리, 네모난 탁자, 몇 개의 걸상을 통해 백성들의 질고를 살피고 빈곤의 걸림돌을 세세히 분별한다. 낙타만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아직도 많다.

 

   (2)

   장부의 이야기—"빈곤구제난관돌파란 실사구시하고 당지실정에 맞게 분류하여 지도하고 정확하게 빈곤구제를 하는것이다.

 

   18동촌은 호남성서부의 평범한 작은 마을이다.

 

   부평행 1년후 2013년 11월 3일, 시진핑 총서기는 이곳에서 처음으로 "정밀빈곤구제"의 중요론술을 제기했다.

 

   호남성 화원현 18동촌은 무릉산맥의 중심지에 위치해있으며 편벽하고 아늑한 산골짜기에 숨어있는 묘족집거빈곤촌이다. 총서기가 18동촌에 도착했을 때 전 촌의 빈곤발생률은 57%에 달했다.

 

   촌민 석발삼은 시진핑 총서기가 그의 집을 방문하고 한집에 앉아서 수입과 지출의 장부를 계산하고 어떤 곤난과 타산이 있는지 물어보고 그의 집의 곡창, 침상, 부엌, 돼지우리를 살펴보면서 일가들에게 신심을 북돋우고 근면함과 지혜로 아름다운 생활을 창조하라고 격려했다는것을 똑똑히 기억했다.

 

   "그는 여러분들이 무엇을 심고 무엇을 기르며 어디에서 수입을 늘이는가 하는것을 똑똑히 생각해보고 큰 구호를 웨치지 말며 허풍치기를 좋아하는 목표를 정하지도 말기를 바란다. 빈곤구제난관돌파란 실사구시하고 당지실정에 맞게 류별로 지도하고 정확하게 빈곤구제를 하는것이다. 마을 주민 시성부는 회상하며 말했다.

 

   2016년 전국 양회 호남대표단 심의현장:

 

   시진핑 총서기는 대표들과 함께 당시의 정경을 회상하면서 또 수입을 늘리기 시작했다.

 

   "내가 정식으로 ‘정밀빈곤구제’를 제기한것은 바로 18동촌이다." 지금 일인당 소득이 얼마나 되는가? 시진핑 총서기가 물었다.

 

   "당신은 그 해 동안 1680위안이었는데 지금은 3580위안으로 늘었습니다." 상서투쟈족묘족자치주 주장 곽건군은 총서기에게 18동촌의 백성들의 수입이 증가되고 촌용촌의 면모가 변화되여 이미 전 성 문명촌과 관광지정촌으로 되였으며 촌민들은 웃음이 많아지고 발전념원이 강해졌으며 나이 많은 남성청년들까지도 "령수증을 떼는" 문제를 해결하기가 쉬워졌다고 알려주었다.

 

   작년에 장가를 간 사람이 얼마나 됐나. 총서기가 물었다.

 

   일곱 명, 바로 탈단한 나이 많은 청년 일곱 명. 곽건군은 이렇게 말했다.

 

   시진핑 총서기는 "최근 한시기 일부 계렬보도를 보면 나도 보고 매우 기쁘고 위안이 되며 그 자체도 시범역할을 했다"며" 더욱 큰 결심과 더욱 명확한 사고방식, 더욱 정확한 조치로 빈곤퇴치난관돌파전을 잘 치르고 기한내에 빈곤퇴치난관돌파목표를 실현해야 한다"고 기뻐했다.

 

   2016년, 18동촌은 온 마을을 빈곤에서 벗어나게 했다.

 

   "장부계산"은 정확한 빈곤구제의 가장 생동한 해석으로 되였다.

 

   2017년 음력설전야, 북경에서 북쪽으로 200여킬로메터 떨어진 하북성 장가구시 장북현의 빈곤촌 덕승촌에서 시진핑 총서기는 촌민 서해성가의 거실에 앉아 그에게 수입지출장부를 계산해주었다.

 

   가격이 많이 떨어졌어요. 시진핑 총서기는 빈곤호의 작은 장부에서 소득 증대의 방도를 제시했다.

 

   시진핑 총서기는 감자는 큰 산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지 간부들에게 감자의 원종육종이라는 이 사업을 크게 할 가망이 있는가고 물었다.

 

   "희망이 있다. 우리 전 현의 감자육종이 전국 5분의 1을 차지한다." 현당위 서기 학부국이 대답했다.

 

   시진핑 총서기는 고개를 끄덕여 말했다. "동무들의 다음단계의 길은 모두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시장화, 규모화할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이런 장면은 낯설지 않다.

 

   강서성 정강산 신산촌 장성덕의 집에서 청해성 호조투족자치현 반언촌 려유금의 집에서 안휘성 금채왕능보의 집에서, 진택신의 집에서, 녕하 고원 양령촌 마과네 가정에서… 시진핑 총서기는 빈곤구제수첩 한권을 펼쳐놓고 "이민직접보조"," 공익림보조", "계획생육상"," 로무수입"을 펼쳤다. 그는 정확한 빈곤구제정책의 시달상황을 살펴보고 그들의 수입과 지출을 자세히 물어보면서 빈곤대중과 함께 빈곤에서 벗어나 치부할수 있는 방도를 타산했다.

 

   빈곤층의 수입지출장부만이 아니다. 전국적으로 도대체 얼마나 많은 빈곤인구가 있고.

 

   "정황을 똑똑히 알아야 사업을 집과 자리에 올려놓을수 있다. 어려운 마을사람들을 도와 가난에서 벗어나 치부하게 하려면 목적성이 있어야 한다. 집집마다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장가장과 리가문은 모두 파악이 있어야 한다. 하북성 부평현에서 곤난군중들을 위문할 때 시진핑 총서기는 이렇게 강조하였다. 2013년에 전국 두 회의 인대대표단의 심의에 참가할 때 총서기는 빈곤구제를 "수류탄벼룩"이나" 큰물관개"를 해서는 안되며 빈곤인구에 대해 정확하게 식별하고 정확하게 방조하고 정확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진일보 지적했다.

 

   총서기가 말하는 "마음속으로는 파악이 있다"," 정밀식별"은 빈곤구제사업의 요해처를 직시한다.

 

   시진핑 총서기의 지시에 따라 전례 없는 빈곤인구서류작성 사업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였다. 2014년, 빈곤구제시스템은 전국적범위에서 빈곤식별을 전개했다. 서류를 작성하여 카드를 작성함으로써 우리 나라의 빈곤수치는 처음으로 촌과 호수에 이르기까지 실현되였다.

 

   이 "장부"가 있었기에 빈곤구제개발은" 점적관개식"정밀빈곤구제의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작은 장부, 큰 마음. 18차 당대회 이래 시진핑 총서기는 장기적인 실천에 기초하여 빈곤구제사업에 대해 과학적인 총화와 리론향상을 진행하여 정확한 빈곤구제방략을 형성함으로써 중국의 빈곤구제사업의 대발전을 촉진하였다.

 

   빈곤퇴치난관돌파이래 7년간 중국의 빈곤인구는 9,000여만명 줄어들어 한 중등국가의 인구총규모에 상당하다.

 

   (3)

   차와 과일의 이야기—"‘물을 먹어도 우물을 파는 사람을 잊지 않고 치부해도 당의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말은 아주 훌륭하다. "

 

   향긋한 안길백차 한 잔을 들고 부자가 된 이 금잎은 한때 편벽한 산촌의 일반 작물에 불과했다.

 

   절강성 안길현 계룡향 황두촌의 당시 백차기지 책임자 매희영은 2003년 4월 9일, 당시 절강성당위원회 서기였던 시진핑 등이 진흙길을 따라 다원에 들어가 백차의 보급재배상황을 물었다. 백차는 어떻게 도입되였고 어떻게 꺾꽂이, 채집, 가공, 판매 상황이 어떠한가?

 

   현재 황두촌의 백차재배면적은 이미 5,000여무에서 1만 2,000무로 확대되였고 년간생산액은 1억 5,000만원에 달하여 지난날 민둥산이 "다해"로 변하였고 촌민들의 수입도" 하루에 1원을 벌"던데로부터 년간 일인당 3만 6,000원을 초과하였다.

 

   부유해지면 당의 은혜를 잊지 않고, 먼저 부유해지면 나중에 부유해지는 것을 잊지 않는다.

 

   2018년 4월, 황두촌 20명 당원은 시진핑 총서기에 편지를 써서 촌에서 백차를 재배하여 치부한 상황을 회보하고 1,500만그루의 차묘목을 기증하여 빈곤지역 군중들이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줄것을 제기하였다.

 

   시진핑 총서기는 이 일에 대해 중요한 지시를 내리고 "물을 먹어도 우물을 파는 사람을 잊지 않고 치부해도 당의 은혜를 잊지 않는다."고 강조하였는데 이 말은 아주 훌륭했다. 물을 마시면 근원을 생각하고 당의 은혜를 잊지 않는 의식을 증강하며 당을 위해 근심을 덜어주고 먼저 부유해지면 나중에 부유해지는 정신을 고양하는것은 빈곤퇴치난관공략전에서 이겨내는데 매우 의의가 있다.

 

   2년이 지난후 1,500만그루의 차묘가 호남, 사천, 귀주 등 3개 성 4개 현의 34개 건서류립카빈곤촌에 뿌리를 내려 기부받은 토지 1862가구 5839명의 빈곤인구의 소득증대를 이끌어 빈곤에서 벗어나게 했다.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의 우월성은 빈곤구제가 종래로 한 지방, 한 단위, 한 사람의 일이 아니라는데 있다.

 

   2015년 2월, 시진핑 총서기는 량가하로 돌아왔다. 그는 특별히 스포츠유틸리티차량으로 험한 산길을 따라 산등성이에 있는 사과재배농장으로 가서 살펴보았다.

 

   비탈밭에서 재배한 사과의 무당 수확고가 4,000근이라는 소식을 듣고 시진핑 총서기는 매우 기뻐했다. 40여년전 새치기를 할 때 마을사람들이 고생스럽게 심은 농작물의 무당수확고가 몇십근밖에 안되였음을 떠올리면 그는 매우 감개무량했다.

 

   시진핑 총서기는 재해로 인한 감산, 동과부동한 가격, 풍년풍작 등 문제를 어떻게 잘 해결할것인가를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맞춤형 지원은 한때 빈곤지역과 무관하다고 여겨졌던 금융제품을 애플 산업 발전의 안정적인 버팀목이 되게 했다.

 

   증권감독관리위원회의 통일적인 계획하에 중국금융선물거래소는 부문별로 부축하는 섬서성 연장현에서 애플 "보험+선물"금융제품을 혁신적으로 출시했는데 보험회사가 과수농가에 가격보험을 책임지고 제공했으며 최종가격변동위험은 선물회사가 선물시장에서 상쇄한다.

 

   혜택을 받은 첫번째 시험호로는 안구진 아청촌 과수농 소금광이 있었다. 그는 2018년에 4근에 30톤의 사과를 보험에 들었는데 후에 시장시세의 파동을 만나 1근에 1.8원이 떨어졌다.

 

   2019년 5월 연안 각 현에서 전체적으로 빈곤에서 벗어났고 사과는 진정으로 "치부과"로 되였다.

 

   한잔의 청차, 한잔의 사과, 한쪼각의 햄, 한주전자의 소주…갈수록 많은 빈곤지역의 특색제품이 대도시의 백성들의 식탁에 오르고있다.

 

   2018년 2월 12일, 시진핑 총서기는 청두에서 정밀빈곤퇴치난관돌파전좌담회를 소집할 때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사회동원을 견지하고 여러 방면의 력량을 결집하며 정부와 사회 두 방면의 력량역할을 충분히 발휘하여 전사회적으로 빈곤퇴치난관돌파에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구도를 형성해야 한다.

 

   2019년 11월,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등 15개 부문은 "전 사회의 력량을 동원하여 소비빈곤구제에 공동으로 참여할데 관한 창의"를 발부했다. 특정빈곤구제, 업종빈곤구제, 사회빈곤구제가 서로 보충하는 "대빈곤구제구도"가 점차 형성되였다.

 

   (4)

   "약새선비"의 이야기:" 빈곤구제를 강화하는것과 지지부지를 결합시켜 빈곤해탈이 지속가능한 내생동력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

 

   1988년, 민동 9현을 걸은후 당시 녕덕지구당위원회 서기 시진핑 은 "약조가 어떻게 먼저 날아야 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민동 9현의 조사수감을 썼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안빈락도"," 가난한자재", "등 관념은 모두 소탕해야 한다. 약한 새는 먼저 날고 가난하면 먼저 부유해질수 있지만 "먼저 날고" "먼저 부유해질수 있는가 없는가는 우선 우리의 머리속에 이런 의식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아야 한다.

 

   당시 적지 않은 동지들은 빈곤퇴치의 희망을 국가에서 자금을 더 많이 조달하고 좀 더 잘 돌보아주는데 두었다. 시진핑 동지는 우리는 원자재와 자금 부족을 해결하는 관건을 우리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 선비 의식의 최우선 요지라며 모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을 사전에 자기에게 부탁하는 것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제약을 받지 않는 일부 분야, 빈곤지역에서 독특한 우세를 갖고있는 지역에서 비정상적인 발전을 할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갖춘다."

 

   "먼저 날자"려면" 감히 날자"는 정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시진핑 동지는 복건성의 9개 지구,시들에서 경제패 아홉째,녕덕의 동지들이 성에 와서 회의를 할 때 모두 마지막 소대에 앉아있기때문에 감히 큰소리로 말하지 못한다는것을 발견하였다.

 

   시진핑 동지는 이 국면이 개변되여야 한다는것을 깊이 느꼈다. 녕덕에 가서 사업한후 그는 성에 가서 회의를 열고 늘 제1소대에 앉아 앞다투어 발언하였다. 그는 빈곤구제와 지지부지, 빈곤지역의 정력이 없어서는 안된다고 굳게 믿었다. 빈곤현과 빈곤지구로 규정되였다고 하여 우리 현이 어떻게 가난하고 오래도록 사람을 보면 정신이 없고 열등감으로 하여 "빈곤현의식"이 생기는데 습관되여서는 안된다.

 

   먼저 날자는 의식이 있으면 날 수 있는 날개가 있어야 한다.

 

   서녕시 회족중학교 고급교원 배수화의 마음속에서 2016년 그 옥란화가 성방한 날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로서 그는 몇개 농목축구학교에 대해 조사연구를 진행한 성과를 가지고 북경에 와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향촌교원의 력량을 개선하기 위해 건언하기를 희망했다.

 

   청해대표단의 심의에서 그는 "향촌교원의 전반 자질이 높지 못한 문제가 여전히 두드러지고있으며 특히 중국어와 민족언어 이중언어교원의 력량이 취약하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솔직한 발언은 시진핑 총서기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빈곤구제를 위해 먼저 지혜를 부축하고 교육을 통해 빈곤에서 벗어나는데 더욱 중시를 돌리며 교육자원의 균등화문제를 힘써 해결해야지 빈곤인구의 자녀들이 출발선에 떨어지게 해서는 안되며 빈곤세대간의 전달을 차단해야 한다."

 

   가난과 우매의 악순환을 깨야 약한 새가 날개를 펴고 날 수 있다.

 

   그러나 드넓은 중화대지에서 "마태효과"의 사례는 보기 드물지 않다.

 

   이런 상황은 시진핑 총서기를 매우 슬프게 한다.

 

   "내가 일부 빈곤한 지방에 가보니 어떤 아이들은 7~8살인데 아직 집에 있으면서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빈곤지역의 교육을 반드시 잘해야 한다. 아이가 출발선에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들에게 교육을 받을 기회와 대학에 다닐 기회가 있게 해야 한다. 앞으로 10년 8년이 지나면 치부의 능수가 될수 있다. 적어도 밥벌이를 할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더는 가난하게 살지 않을수 있다. "

 

   오직 교육만이 빈곤지역에 날개를 달고 "약한 새가 먼저 날아가"는 꿈을 실현할수 있다.

 

   "부지"를 위해 그는 실정을 료해하기 위해 3시간여를 전전하면서 중경 대산 깊은 곳의 중익향소학교를 찾아 사생식당의 음식점과 료리사들을 자세히 살펴보고 아이들의 학습과 생활 상황을 료해했다.

 

   "부지"를 위해 그는" 빈곤한 산간지대에 향촌교사를 들여보내거나 아이들이 밖에서 기숙하도록 해야 한다. 너무 편벽한 곳에 대해서는 집중숙박을 하지 않아도 되고 기숙사에 가기 위해서는 아이가 몇시간 동안 걸어야 하는데 안전하지 못하다. 교원을 파견하여 대우를 좀 잘하고 륜번제를 실시할수 있는데 이런 경력을 교원이 등급을 올리는 중요한 의거로 삼을수 있다. "

 

   "부지"를 위해 그는" 국배계획(2014)"북경사범대학 귀주연수반 훈련참가교사에게 보내는 답신에서 젊은이들에게 "교육개혁의 분진자, 교육빈곤구제의 선구자, 학생성장의 인도자가 되도록 노력하라"고 간곡히 당부했다.

 

   "약한 새는 먼저 날기를 바라는다."는 신념과 지향은 변화를 조용히 일으킨다.

 

   "지금 당의 정책이 이렇게 좋은데 힘내어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총서기님께 미안합니다!" 하북성 부평현 락타만촌에서는 소박한 촌민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자신만 있으면 황토가 황금으로 변한다’는 총서기의 이 말은 정말 영험하다. 마을 사람들이 웃으며 말했다.

 

   작은 마을은 일 년 내내 똑같다. 거미줄은 옛날 향기가 왕성한 작은 절간에 살금살금 기어올랐다. 향을 피우는 것만으로는 가난의 뿌리를 뽑을 수 없다. 한 촌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구제를 기다리지도 말아야 한다. 모두가 함께 방법을 강구하여 방도를 찾고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누가 빈곤에서 벗어날수 있는가? 영예롭게 방패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

 

   최근 몇년간 시진핑 총서기는 많은 장소에서 "빈곤구제를 강화하는것과 지지부지를 결합시켜 빈곤해탈이 지속가능한 내생동력을 가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적이 있다. 빈곤에서 벗어나는것은 물질적조건의 개선일뿐만아니라 더우기는 인간의 전면적발전이다. 이것은 중국의 반빈곤투쟁의 제목이다.

 

   (5)

   현당위서기의 "직장에 복귀"한 이야기—"빈곤현의 현당위서기, 현장은 그곳에 안정되여 책임을 끝까지 짊어져야 하며 빈곤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가서는 안된다’고 해야 한다.

 

   얼마전, "5명의 서기 동틀"의 사진 한장이 인터넷상에서" 스크린을 칠"했다.

 

   부슬부슬 내리는 봄비속에서 섬서성 진파산구를 고찰하고있는 시진핑 총서기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한창 로동하고있는 다농들에게 다가왔다. 그의 신변에는 섬서성당위원회 서기, 안강시당위원회 서기, 평리현당위원회 서기, 장가평촌당지부 서기가 있었다.

 

   먼 산은 대지와 같고, 다원은 그림과 같다. 당의 총서기에서 기층당지부 서기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당의 각급 지도간부들이 흙에 뿌리를 내리고 일심전력 인민을 위하는 소박한 심경을 보아냈으며 중국공산당의 조직우세와 제도우세가 어디에 있는가를 보아냈다.

 

   시간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5년 11월, 북경 경서호텔. 외계에서 "사상 최고규격"으로 불리우는 중앙빈곤구제개발사업회의가 이곳에서 개최되였는데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전부 참석했다.

 

   회의에서 22개 중서부성(자치구, 직할시)의 주요책임자가 빈곤퇴치난관돌파책임서에 자신의 이름을 정중하게 서명했다. 빈곤퇴치난관돌파중임을 떠메고있는 이런 "제1책임자"들은 당중앙위원회에" 군령장"을 내렸다.

 

   군중 무담하다. 시진핑 총서기는 "군령장은 함부로 작성한것이 아니라 우리가 말하기만 하면 실행해야 한다."고 여러번 강조하였다.

 

   성에서는 중앙에 《군령장》을 내오고 지구시에서는 성, 현에서는 지구시에 대하여서도 《군령장》을 내옴으로써 압력이 층층이 전도되고 책임이 층층이 압제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번 회의가 소집된후 약 반년, 2016년 6월 3일, 대별산구에 위치한 안휘성 륙안시 금채현에서 한차례 현지도간부회의를 소집하고 상급에서 반동욱동지가 더는 현당위 서기를 담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선포했다. 이전에 그는 이미 륙안시당위원회 부서기로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12일후에 반동욱동지가 다시 돌아왔는데 직무는 여전히 륙안시당위원회 부서기, 금채현당위원회 서기였다.

 

   원래 한달 남짓한 전에 시진핑 총서기는 금채현을 시찰하면서 "빈곤구제난관돌파전을 잘 치르려면 안정적인 빈곤퇴치조치를 취하고 장기적이고 효과적인 빈곤구제메커니즘을 구축하여 빈곤구제사업을 꾸준히 틀어쥐여야 한다."고 명확히 제기하였다. 반동욱동지가 "리임"하고 또" 직장에 복귀"한것은 바로 총서기가 직접 내린 지시이다.

 

   "좀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 빈곤현의 현당위서기, 현장은 그곳에 안정되여 책임을 끝까지 짊어져야 한다. 빈곤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가서는 안된다’는 말이 있다. 무와 구덩이가 하나면 물이 나와야 두 다리가 진흙투성이가 된다. 시진핑 총서기는 "이 조목이 없으면 누구나 엉덩이를 툭툭 털고 가는데 그러면 물잔치, 물잔치가 된다."고 여러번 강조했다.

 

   2017년 음력설전야, 시진핑 총서기는 혹한을 무릅쓰고 하북성 장북현 덕승촌을 찾아 곤난군중들을 위문했다. 촌민 서해성가에서 현당위 서기 학부국은 덕승촌 제1서기 소회빈을 가리키며 총서기에 회보했다. "이는 성에서 파견한 제1서기로서 중요한 역할을 발휘했다. 여기에는 태양광구빈프로젝트를 도입하고 우물을 파고 길을 닦으며 과학연구대학과 련계하여 농업기술훈련을 전개하고 기층당건설을 강화하는것이 포함된다."

 

   "우리의 목표는 ‘빈곤에서 벗어나지 않고 갈고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소회빈은 이어 총서기에 다음과 같이 회보했다. 그는 2016년 2월에 촌에서 제1서기로 있으면서 매달 20여일간 촌에서 일했다.

 

   "기차가 빨리 달리는 것은 모두 차두대에 달려 있다." 시진핑 총서기는 빈곤퇴치난제해결의 기관차가 바로 당지부라고 말하였다. 빈곤구제사업대, 제1서기를 파견하는 이런 조치들이 모두 있는데 관건은 단단히 다지고 실효를 발휘하는것이다. 제1서기는 진정으로 빈곤구제를 해야 하며 몸을 사리고 이곳에서 일해야 한다.

 

   소회빈은 이 말들을 기록하였다.

 

   "심층빈곤은 견실한 가운데서의 견실한 투쟁으로서 이런 싸움을 하려면 가장 잘 싸울수 있는 사람을 파견해야 한다."는것은 총서기가 시종 견지해온 관점이다.

 

   그는 농촌기층당조직을 튼튼히 다지는것과 빈곤퇴치난관돌파를 유기적으로 결부시키고 사상이 좋고 작풍이 바르며 능력이 강한 우수한 젊은 간부와 대학졸업생을 빈곤촌에 파견하여 사업하도록 하는데 중시를 돌려야 한다고 여러차례 지적하였다.

 

   제1서기가 어떻게 사업을 전개할것인가에 대해 시진핑 총서기도 늘 그들에게 훈계를 주었다.

 

   총서기는 빈곤지역의 간부사업이 힘든것을 보고 마음속에 명기하였다.

 

   2019년 신년사에서 그는 따뜻한 마음으로 제1서기에게 인사를 했다. 인민일보사에서 그는 동영상으로 인민일보에 하북성 란평현 우영촌 제1서기를 파견하여 사업상황을 료해하고 전국의 모든 빈곤구제촌 제1서기들에게 답례했다.

 

   "그들을 관심하고 배려하고 관심하며 그들의 사업생활을 위해 근심을 덜어주고 곤난을 해결해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각 방면의 자질이 좋고 조건이 구비된 사람들을 등용, 사용함으로써 그들이 빈곤퇴치난관돌파전에서 이기기 위해 열심히 일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시진핑 총서기가 말했다.

 

   2015년 11월, "빈곤퇴치난관돌파전에서 승전할데 관한 중공중앙 국무원의 결정"은" 빈곤퇴치난관돌파기간내에 빈곤현 현급지도부는 안정을 유지하고 표현이 우수하고 조건에 부합되면 당지에서 승급할수 있다."고 명확히 제기했다.

 

   시진핑 총서기의 직접적인 배려와 지도하에 2015년부터 전국적으로 루계로 45만 9,000명의 제1서기를 선발, 파견했는데 현재 23만명에 달하는 일터를 배치하여 서류철립카빈곤촌과 당조직이 무기력하고 해이한 촌을 전부 피복함으로써 대중들로부터 "당파에서 온 훌륭한 간부"," 가난에서 벗어나 치부하는 선도자"로 불리웠다.

 

   (6)

   길의 이야기—"그것은 정말 가시덤불을 헤치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는것이다. "

 

   "중국의 빈곤감소 길의 특이한 점은 어디에 있습니까?"

 

   2019 빈곤감소와 발전고위층포럼에서 중국주재 유엔시스템조정원 라세례는 이런 문제를 제기하였다.

 

   답안을 찾으려면 거슬러 올라가는 길밖에 없다.

 

   50년전, 섬서성 량가하의 황토에는 골짜기가 종횡으로 뻗어있었다. 시진핑 동지는 백성들의 어려움을 직접 목격하고 군중들의 질고를 체득했다.

 

   "지식청년들은 금방 갔을 때 식량을 좀 공급하였는데 후에 자기가 일해야 하므로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긴장해진다." 여러해가 지난후에도 시진핑 동지들은 당지의 백성들이 늘 "정월이 살찌고 2월이 여위고 반죽음 3, 4월이 살지 못한다."고 말한것을 기억하고있다. 봄갈이를 할 때 집집마다 남은 식량을 농사를 짓는 건장한 로력에 남겨놓고 시누이가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빌어먹는다.

 

   "처음에 지식청년은 머리속에 개념적인것이 있었는데 밥을 달라고 하는 사람은 다 나쁘다고 생각했다.… 후에 우리자신이 곧 밥을 달라고 할 지경에까지 이르렀을 때 어찌된 일인지 알게 되였고 주동적으로 나가서 밥을 달라고 하는 사람들을 도와 길을 열어주고 소개장을 보내주었다. 그때 이런 현상들은 우리의 마음을 크게 건드렸는데 농민들이 어찌하여 이렇게 고생하는가를 느끼게 되였다.

 

   몇십년후 시진핑은 중국국가주석으로서 미국을 방문하여 워싱톤주 현지정부와 미국친선단체와의 련합환영연회에서 전 세계에 "내가 간절히 바라던 한가지 일은 바로 고향사람들이 한끼의 고기를 배불리 먹을수 있고 또 자주 고기를 먹을수 있도록 하는것이다."는 자신의 당년의 소박한 념원을 털어놓았다.

 

   바로 이렇게 어려운 길을 걸어야만 빈곤에 맞서 싸울 결심이 이렇게 확고해질수 있다. 시진핑 총서기 자신이 말한바와 같이 "중국의 몇십년래 빈곤감소사업의 로정을 돌이켜보면 나는 깊은 체험을 갖고있다."

 

   "전승을 거두지 못하면 절대 군대를 철수하지 않는다."는 중국공산주의자들의 쟁쟁한 맹세속에서 수천수만의" 량가하"의 옛모습이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였다. "아스팔트길을 닦고 마을사람들이 벽돌집을 짓고 인터넷에 접속하여 로인들이 기본양로금을 향유하고 촌민들이 의료보험이 있어 아이들이 량호한 교육을 받을수 있다. 물론 고기를 먹는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복건성 수녕현 하당향의 산길은 사람을 감동시키는 옛일을 목격하였다.

 

   30년전, 하당의 산길이 구불구불하여 시진핑 동지는 대중을 이끌고 빈곤에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그곳은 너무 외져서 다니기 힘들어 윗사람 간부가 아주 적어요. 지구당위 서기가 제가 제일 먼저 갔어요." 시진핑 동지는 늘 당시의 정경을 회상하며 "그것은 정말 가시덤불을 헤치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넜다. 향당위원회 서기가 땔감을 들고 앞에서 베었는데 우리 모두가 대나무 장대를 들고 강변을 따라 걸으면서 이렇게 좀 가까이 가자고 했다."고 말했다.

 

   현지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길에 나와 2, 3리 간격으로 흙약재로 만든 청량탕 한 통을 올려 시진핑 동지 일행을 더위를 식혔다. 힘들었지만 감동했어요. 시진핑 동지는 "그런 곳에 한번 가보면 몇세대를 기억한다. 지금도 습서기가 하당향에 가봤다고 한다. 풍몽룡은 수녕에서 지현으로 있다가 부임한지 반년이 된다. 우리가 이런 정신을 따라배워 벼슬을 위해 모두 편안한 벼슬을 하려 한다면 봉건시대의 사대부보다 못하다"고 정겹게 말했다.

 

   오늘 수천수만의 제1서기, 촌주재 간부들은 가장 빈곤한 곳을 고수하고 마을에 들어가 한사람한사람씩 대책을 세워 "병근"을 정확하게 찾고" 가난의 뿌리"를 뽑아내고있다.

 

   2년전, 사천 대량산의 산길이 험하고 험준하여 시진핑 총서기는 천리길도 마다하지 않고 그곳에 가서 그곳의 이족대중들에게 배려와 희망을 가져다주었다.

 

   문을 열어놓는것은 절벽이고 배후에는 절벽인 대량산의 깊은 곳이며 아투레르촌사람들은 조상 대대로 "길"에 대한 형상인식으로서 한갈래의 절벽과 한갈래의 천험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도는 험난하여 하늘에 오르기 어렵다. 이곳의 촌민들은 나무막대기와 등나무막대기로 가장 험요한 곳에 등나무사다리를 엮었는데 이런 "천제"가 바로 그들의 항쟁운명의 유일한 출로와 희망이였다.

 

   마을 사람들의 외출 상태를 보면서 가슴이 미어집니다. 2017년 전국 양회에서 시진핑 총서기가 량산주 "절벽촌"에 관한 TV뉴스를 보도할 때 관심의 정이 표현에 넘쳤다. 현지에서 새로운 철제 사다리를 건설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총서기의 마음은 다소 느슨해졌다. 구름끝에 숨어있는 "절벽촌"은 관광을 하여 손님을 끌어들인다. 걱정이 태산인 부모는 이때로부터 더는 자녀들의 등교길에 대해 공포를 느끼지 않게 되였다.

 

   드넓은 중화대지에서 빈곤퇴치난관돌파가 억만 인민을 위해 분투의 길을 열어주었다.

 

   "우리는 빈곤퇴치난관돌파로 빈곤지역의 경제와 사회 발전의 전반국면을 총람하는것을 견지하여 빈곤지역에 새로운 발전국면이 나타났다. 특색산업이 부단히 장대해지고 산업빈곤구제, 전자상거래빈곤구제, 태양광빈곤구제, 관광빈곤구제 등 비교적 빠른 발전을 가져와 빈곤지역의 경제활력과 발전저력이 뚜렷이 증강되였다.

 

   지금 빈곤퇴치난관돌파전에서 결승전을 치르고 분발노력하는것은 시기상조이다.

 

   "나는 빈곤퇴치난관돌파전은 가볍게 일격에 이길수 있는것이 아니며 결정적인 성과로부터 전면적인 승리에 이르기까지 직면한 어려움과 도전은 여전히 간고하므로 절대 해이해서는 안된다고 여러번 말한바 있다. 남은 빈곤퇴치 난관돌파 임무가 막중하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전염병이 새로운 도전을 가져오고 빈곤퇴치 성과를 공고히 하는 데 어려움이 많은 등 현실상황에 직면하여 시진핑 총서기는 시종 명석하고 랭정하고 침착하게 대응했다.

 

   초창기부터 량가하에 이르는 지식청년들, 나라와 인민을 위해 밤낮으로 공무에 종사해온 인민지도자들에 이르기까지 시진핑 동지는 비탈이 급하고 골짜기가 깊은 반산길을 걸었고 빙설이 뒤덮인 농촌길을 걸었으며 밀파도가 세차게 몰아치는 들길을 걸었다… 비바람과 함께 전진하였다.

 

   오늘 그는 인민을 이끌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탄탄대로를 활보하면서 전진하고있다.